[칼럼] 호의에 가려진 권리···소년보호재판의 현실

칼럼
작성자
InCRC InCRC
작성일
2021-06-08 15:39
조회
89

" 호의에 가려진 권리···소년보호재판의 현실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가정법원 법정에 선 소년(소년법에 따라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부과받는 만 10세 이상 만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말한다)에게 진술하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안내 직후, 판사가 질문했다.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나이는 2021년 5월 기준으로 만 13세지만, 중한 정도의 자폐성 장애가 있으며, 지능지수는 50 정도인 장애아동이다. 지하철 노선도와 숫자를 외우고, 반복된 일상을 소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제와 지난 주를 구별하기는 어려워한다.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적절히 응대하기는 어려운 특성도 있다. 그런데 왠지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딱딱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남성이 한 단 높은 자리에 앉아 소년을 내려다보며, “혐의”를 인정하냐며 질문을 한다. 소년은 이 상황이 불편하고, 어려운데, 질문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 움츠러든다.

곁에 나란히 선 부모는 판사의 질문에 당황했고, 화가 났지만,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발달장애 정도와 지적 장애가 갖는 특성을 설명하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기 어려워하는지 이미 의견서 작성을 통해 재판부에 다 제출한 뒤였다. 장시간 아이 언어치료와 상담을 담당한 전문의 소견서도 제출했다. 무엇보다, 수사 전반에서 장애아동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아동의 방어권이 박탈되었으며,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거의 없는 불충분한 수사 결과를 토대로 아이를 소년재판에 송치한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나는 시점에 심리가 개시되어 아이에게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판단해달라고 의견서에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판사의 질문은 혐의를 전제하고 있으며, 재판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전혀 헤아리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모는 참았다. 소년보호재판은 판사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므로, 판사의 기분을 괜히 불편하게 하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결정을 기다리자는 보조인의 거듭된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판사의 질문이 있던 그 시간, 나는 소년의 보조인(소년보호재판에서 소년을 대변하여 변호하거나, 법률적 조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같은 법정에 있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40조가 확인하였듯 의심스러울 때는 당사자의 이익이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소년사건에서도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이에 사건과 관련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사건 발생 자체가 의심스러우며, 소년을 ‘범죄자’로 취급한 경찰의 수사와 송치 결정은 모든 과정이 법률위반이라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의견서에서 거듭 요청했건만, 소용없던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답답함이 차오르던 순간, 판사가 손가락 5개를 펼쳤다.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파란색 골무를 낀 상태였다.

“이게 몇 개죠?”

소년은 잠깐 멈칫했다. 질문에 답을 하려니,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말해야 할지, 파란색 골무가 있는 엄지는 빼고 네 개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자 판사가 엄지손가락을 접고 다시 물었다, 몇 개냐고. 소년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네 개요.”

이후, 판사는 “형사재판에서는 책임능력을 다툴 수 있지만, 여기는 소년재판이니까요. 보조인 의견대로 불처분(심리 결과 보호처분을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 하는 결정) 하겠습니다. 보호자는 소년을 더욱 잘 보호하십시오.”

바라던 결과였다.

2020년 6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동보조인과 함께 사회적 자립훈련을 통한 홀로 지하철 타고 등하교를 하던 소년에 대한 범죄신고가 있었던 이후, 지하철에서 만 12세 소년이 성인 남성 5명에게 붙들렸던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문도 모른채 붙잡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간 엄마가 경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말한 이후, 경찰의 조사요구에 어떤 범죄사실인지 부모가 알아야 조사에 임할 수 있다며 알 권리를 주장하던 중 이 사건이 소년부에 송치된 이후, 그 낱낱의 고통스런 시간 동안 바라던 것은 이 사건이 끝나기를, 그리고 범죄의 인정을 전제하는 보호처분을 부과할 사안이 아님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사의 판단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어 불처분 결정을 한다기보다는, 수강명령, 사회봉사, 혹은 소년보호시설에 보내는 보호처분을 결정해도 장애가 있는 이 소년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불처분 결정을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건 바라던 결과가 아니다.

무엇보다 소년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 손가락 개수를 맞추는 것이라니, 합리적인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유일 수 있을까. 장애아동을 대하는 소년부의 비전문성에 모욕감과 서글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어쨌든 아이는 이제 정말로 사법절차에서 벗어났다. 사건이 신고된 이후 꼬박 11개월 하루만이다.

그러나 재판이 끝났다고 아이와 그 가족의 일상도 회복되는 것일까. 낯선 성인들에게 붙들리고 경찰에게 붙잡혀있던 경험 때문에 아이는 홀로 지하철을 탈 수 없게 되었고,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사건 이후로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의 회복은 매우 더디다. 무엇보다 부모는 더 이상 아이 혼자 세상에 내보낼 용기가 없다. 비장애인과 다른 내 아이의 속도와 시간에 맞춰 아이의 존재를 배려해주지 않을 것이라 의심만 든다.

현행법상 수사단계에서 아동에 대한 수사절차를 다른 절차와 분리하거나, 아동의 특수성에 입각한 배려를 제공하는 조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동이 범죄 피의자인 경우에도 일반 형사사건과 동일하게 경찰 수사가 진행된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재비행 위험성 판단과 그에 맞는 선도 교육을 목적으로 소년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조사 과정에 전문가를 참여시킬 수 있지만(「소년업무규칙」 제23조), 그 외에 경찰 집단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별도의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최정규 외, 2018, 아동·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 국가인권위원회, p. 89~90). 또한, 소년에 대한 법원 조사는 의학·심리학·교육학·사회학이나 그 밖의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해야 하지만(「소년법」 제9조, 제11조), 아동권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아동의 관점에서 관련된 사건을 해석하는 법관과 조사관의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은 불충분하며, 장애아동에 대한 전문성은 더욱 부족하다. 낱낱의 부족함이 모여 소년사건 전반에 아동의 존재는 쉽사리 간과되고 있다.

사건 신고가 있던 때부터 아이는 현행범이 아니었다. 경찰이 아이를 처음 만나던 시점에 다르게 행동했다면, 수사 과정에서 장애아동의 특성을 같이 이해하고 부모와 소통했다면, 소년재판 전반이 “혐의를 전제로,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는지, 가정이 아이를 돌보기에 괜찮은지”를 묻기 전에 사건의 범죄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제출된 증거와 여타 전문가의 조력으로 판단하고자 노력했다면, 그랬다면 아이의 지연된 시간은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았을까.

재판이 끝나고 소년의 보호자는 나에게 “불처분 결정이 나올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민망하게도 나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심리가 빨리 열리도록 역할을 하지도 못했고, 가사조사관이 사건의 맥락과 소년의 발달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술, 담배를 하는지 등의 형식적인 질문을 던질 때도 막지 못했다. 판사에게 혐의를 인정하는지와 손가락 갯수를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항변도 제대로 못했다. 아동이 소외된 소년재판 전반에 장애아동은 더욱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을 경험하며 막막함만 느꼈다.

우리 사회는 장애아동과 더불어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법절차 전반이 아동의 존엄성과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더불어 노력하고 있는가. 아동인권 활동가로서, 사법체계에 조그만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기저기 텅텅 비어있는 아동인권의 공백을 맞닥뜨릴 때마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본 원고는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사무국장이 작성하였으며, 경향신문 기고 글로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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