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오민애(법무법인 율립) 국제아동인권센터 자문위원)

자문위원
작성자
InCRC 국제아동인권센터
작성일
2020-08-21 11:20
조회
388


로스쿨을 다니면서 방학동안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처음 교육을 나간 날은 시험을 마치고 방학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도 교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붕 떠 있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준비한 교안대로 잘 할 수 있을지, 같이 볼 자료는 다 챙겨왔는지 긴장을 한가득 안은 채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열심히 외우고 설명하려 했던 이야기들은 글자로 흩어져 머릿속을 맴돌기만 했습니다. 일터에서 지켜져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하는지, 어떤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을지, 어렵게 들리지는 않을지 머릿속과 마음속은 복잡했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약속한 시간을 초과해 일해서도 야간에 일해서도 안 되고, 일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리 어렵지도 않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하려다 보니, 어떻게 해야 더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이들이 읽기라도 했는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쟤는 사장님이 월급을 다 안줬대요.”

“다치면 산재처리 해주던데요”

“최저임금은 지켜서 줘야 하는 거죠?”

“쉬는 시간에는 일하지 말라고 하던데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무엇을 알려줘야 할지, 어떻게 하면 ‘경험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쉽게 전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저는, 사실 아이들이 잘 모를 것이라고 당연히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아이들이 노동의 주체일 수 있고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당사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야 말이죠.

아동, 어린이, 청소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보호하고 무언가를 알려줘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보장받고 누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이를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는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동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동에 대한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이 전제돼야 할테니까요.

아동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그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해 늘 그 자리에 있어 왔던 국제아동인권센터와 함께하기로 하면서, 무더웠던 여름날 교실의 광경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지, 혼란스러웠던 그 시간이 추억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다짐도 해봅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아동을 바라보고 아동이 처한 현실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본 칼럼은 오민애(법무법인 율립) 국제아동인권센터 자문위원이 작성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자문위원을 맡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제가 어떤 자문을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많이 배우고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문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는 글인만큼, 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 칼럼은 베이비뉴스에 특별기고 되었습니다.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7874


작성일: 202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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