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그 편안함과 불편함의 사이에서

작성자
InCRC
작성일
2017-08-25 10:26
조회
436


어린이와 유아를 동반한 손님을 받지 않는 일명 '노 키즈 존(No Kids Zone)' 식당과 카페들이 최근 급속도로 늘면서 아이를 둔 가족 손님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조용한 분위기와 아이의 안전, 인테리어 장식품 파손 방지 등의 이유를 들며 출입을 막아서는 업소가 늘면서 이를 반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중략…)
부산일보 2017. 07. 13.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70713000373

최근 ‘노키즈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손님의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아동과 아동을 동반한 가족(이하 ‘아동과 보호자’라 함), 특히 영유아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노키즈존에 대한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살펴보고,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노키즈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〇 노키즈존, 우리는 그 정당성에 공감할 수 있는가

ㅡ 헌법 제15조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좁은 의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그가 선택한 직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영업의 자유)를 포함하는 직업의 자유를 뜻한다. (헌재 1998. 3. 26. 97헌마194) ㅡ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입장은 업주의 영업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식당이나 상점을 운영하는 가게 주인은 운영의 편의와 이윤확대를 위하여 특정인의 입장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자 가게를 방문한 손님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아동의 출입제한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울고, 뛰어다니며, 때로 무례한 행동도 하니까.

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동의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소비를 주도하는 청장년층이 많이 찾는 음식점이나 카페의 인테리어는 뾰족하거나 반짝거리는 장식물, 빈티지한 거친 벽, 미끄러질 수 있는 바닥 재질 등 성인의 취향과 신체에 맞추어 설계되어 있어, 공간특성상 아동에게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음식점에서 뛰어다니던 아이가 화로를 나르던 식당 종업원과 부딪혀 화상을 입은 사건에서는, 식당의 과실이 인정되므로 치료비 일부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대구지방법원 2008. 6. 13. 선고 2007가단62502 판결).

그런데 위와 같은 노키즈존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아동이 성장하면서 거치는 발달적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영유아기 아동의 의사소통 수단은 ‘울음’이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울음으로써 배고픔을 알리고, 아픔을 호소하며, 애정을 찾는다. 또한 아동기는 온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시기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건드리고, 입에 넣어보는 행동들은 호기심으로 충만한 아동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동의보감은 “사람이 태어나 10세면 오장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혈기가 비로소 통하게 된다. 진기(眞氣)가 아래에 있어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었다.


〇 우리 모두 한때는 아동이었음을

기실 아동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적하는 문제 상황의 대부분의 원인은 “성인의 무례함”이다. 아동을 보호하고, 적절한 훈육과 교육을 통해 양육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보호자에 대한 불편함이다.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은 많이 안 먹어요"라며 자기들 먹을 것만 계산하겠다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냥 손님을 받았는데 결국 화근이 됐다. 어린 꼬마들은 가게 안에서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에 장난감을 빠뜨리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http://www.insight.co.kr/news/116105

한 드라이브스루 매장의 직원은 "작은 쓰레기통을 주문대 옆에 놓고 근무한 적도 있는데 아이 오줌이 담긴 페트병을 비롯해 기저귀 같은 것까지 막 버리다 보니 1~2시간이 지나면 가득 찼다"고 하소연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502715

부모는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고, 달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가게를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환경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집에서처럼 재잘거리는 아이에게 조금 더 조용히 말해야 할 때도 있음을 알려줄 수 있다. 바깥에서처럼 신나게 뛰어다니고픈 아이에게는 제한된 공간에서 앉아있는 방법,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아이가 아직 먹는 게 서툴러 주변이 지저분해졌을 때, 부모와 아이는 함께 치울 수 있다. 모든 아동들은 경험으로서 사회의 약속을 배우고 이해하며 성장한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깝게 함께하는 부모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노키즈존의 문제는 아동의 문제가 아닌 아동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의 양육태도 문제로 비춰지기도 한다.

보호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가게 주인과 종업원은 적절한 주의와 배려를 요청할 수 있고,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례한 손님에게는 퇴장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서로 다른 개인이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권리행사이다. 그러나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동의 존재만으로, 아동과 보호자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또, 보호자 아닌 성인에게는 아동의 성장과정에 대한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아동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동을 포함한 모두’가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조성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고 하지 않았던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5조도 “부모나 확대가족, 공동체 구성원, 후견인 등 법적 보호자들은 아동의 능력과 발달정도에 맞는 적절한 지도와 감독을 행함으로써 아동이 그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가는 이러한 보호자들의 책임과 권리,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즉, 누구나 아동학대를 신고할 수 있음을 법이 정하고,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아동학대를 신고할 법적 의무가 있듯이(「아동학대처벌법」 제10조),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는 아동권리를 위한 도덕적, 법적 의무가 있다.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다.

예컨대, 보호자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위험한 순간에는 다른 성인들이 아동의 안전을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우리는 밥을 먹으러 여기 왔는데, 친구도 앉아야지 밥을 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일하시는 분들도 불편할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울음과 호기심 많은 수다는 참을 수 없는 소음인 것일까. 물론 부모 역시 다른 성인들의 배려와 지원, 지지를 수용할 준비는 필요할 것이다.

“All grown-ups were once children-although few of them remember it.” - 어린왕자 서문 中
어른들 모두 한때는 어린아이였음을, 왜 우리는 잊고 지내는 걸까.


〇 차별을 넘어선 인권존중

노키즈존은 아동과 보호자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간주한다. 어린 연령의 사람,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거부하고, 배제한다는 점에서 차별이다. 누구나 합법적인 범위에서 자유롭게 머무를 공간을 선택하고 개인적 행동을 할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ㅡ 우리 헌법 제10조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행복추구권은 그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하는데,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개인이 행위를 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하여 자유롭게 결단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에 관한 사항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인정되는 포괄적인 의미의 자유권으로서 일반 조항적인 성격을 가지는 기본권이다. (헌재 2000. 6. 1. 98헌마216) ㅡ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은 유치원 및 학교 인근에 경마장, 사행행위업소, 단란주점 및 유흥업소 등의 설치를 금하고(제9조),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는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를 정하고 있다(제2조 제5호 가목). 이들 시설처럼 그 영업의 고유목적에 비추어 아동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에 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연령만을 기준으로 아동집단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

같은 이유로 장애인 출입금지, 노인 출입금지, 외국인 출입금지, 여성 출입금지는 부당하다. 흑인과 백인구역을 구별하고, 인종차별이 당연시되던 때로부터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오늘날, 우리 모두 성, 인종, 나이, 출신지역, 외모, 직업, 경제상황, 사회적 지위, 정치적 의견 및 사상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받지 말아야 할 인권의 기본원리를 알고 있다.


왜 우리는 유독 아동에게만 엄격해지는가.

아동은 성인의 보호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 의존성과 약함을 이유로 아동의 인권문제는 다른 이슈보다 경시되어 왔다. 국제사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통해 ‘오로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기 쉽지만, 성인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 마땅한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게 된 이유이다. 아동은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받지 않고(협약 제2조), 아동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며(협약 제3조), 참여와 의사표현의 기회를 존중받으면서(협약 제12조),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조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권리(협약 제6조)가 있다. 이러한 아동의 기본적 권리 향유는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사회집단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나의 권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타인의 권리를 알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나의 권리를 존중받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타인의 권리를 배려할 것을 당연히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노예, 흑인, 여성, 아동에 이르기까지 숱한 차별의 굴레가 반대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확연히 눈에 띄는 차별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다양한 이유로 차별이 발생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독박육아’를 강요당하고, 육아를 올곧이 담당하는 과정에서 ‘맘충’이 되고 사회에서 배제된다. 끊임없는 계급과 서열을 재생산하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혐오를, 우리는 잠자코 지켜볼 것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는 존재일 수 있으며, 어느덧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차별의 합리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인권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명칭에서부터 아동의 존재를 부정하는 ‘노키즈존’에 대한 불편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전체 5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논의 -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알고 있나요?
InCRC | 2017.09.29 | 추천 0 | 조회 56
InCRC 2017.09.29 0 56
4
교육의 목적,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하여
InCRC | 2017.09.15 | 추천 0 | 조회 217
InCRC 2017.09.15 0 217
3
노키즈존, 그 편안함과 불편함의 사이에서
InCRC | 2017.08.25 | 추천 5 | 조회 436
InCRC 2017.08.25 5 436
2
그 다음엔? 소년전문법원도요!
InCRC | 2017.08.03 | 추천 3 | 조회 202
InCRC 2017.08.03 3 202
1
언론과 아동인권, 우리 사회의 책임 <개인정보에 대한 민감성>
InCRC | 2017.07.18 | 추천 6 | 조회 222
InCRC 2017.07.18 6 222